[매일일보 칼럼] 지방소멸의 위기에서 다시 보는 도시 브랜딩

 

 그동안 지자체들은 '도시 브랜딩'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로고, 슬로건, 상징물을 만들어냈다. "살고 싶은 도시 ○○", "○○, 품격 있는 도시"와 같은 비슷한 문구가 난무했고, 고유성 없는 시각적 디자인들이 지역 곳곳을 뒤덮었다. 차별화보다는 모방에 가까운 작업이 반복되면서 시민들은 도시 브랜딩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시 브랜딩은 오랫동안 '보이는 것'을 중심에 두고 추진되어 왔다. 상징물, 문구, 홍보 캠페인, 공공디자인 개선 등이 브랜딩의 핵심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했고, 도시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형식적 반복에 머물렀다. 도시마다 거의 유사한 표현을 공유하게 되었고, 시민들조차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만의 고유한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이미지 피로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시의 의미와 정체성이 모호해질수록, 사람들은 그 도시에 대한 애착을 잃는다. 도시에 머무는 이유와 다시 돌아올 동기를 상실한 사람들은 결국 다른 곳을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개별적 이동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역의 활력 저하와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진다. 청년은 떠나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인구구조는 고령화되고, 지역의 경제·문화 생태계는 점점 무너진다. 그렇게 지방소멸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시작된다.

 

 지방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아니다. 지역이 가진 존재 이유와 고유성, 지역에 사는 의미와 가치를 시민과 외부인이 체감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인 위기다. 도시가 스스로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고 구성원조차 그 도시에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그 공동체는 점차 해체될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상실한 도시에서 사람도 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 브랜딩은 단지 마케팅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물론, 도시 브랜딩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하지만 도시 브랜딩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시민들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다.

 

 지방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은 공통적으로 다음의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지역의 매력을 외부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지역 내부의 시민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잃어가고 있다. 셋째, 청년층이 머물거나 돌아올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서 도시 브랜딩 전략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첫째, 도시 브랜드는 '우리 도시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담아야 한다. 이는 슬로건이나 엠블럼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도시에 살아야 할 이유, 방문해야 할 명분, 귀향할 당위를 스토리로 풀어내고, 그것을 정책·공간·생활문화 속에서 일관되게 보여줘야 한다. 도시 브랜드는 철학이며, 태도이자, 지속 가능한 도시 전략 그 자체여야 한다.

 

 둘째, 도시 브랜드는 외부 홍보보다 내부 결속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제까지의 도시 브랜딩은 외지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시를 지탱하는 힘은 내부에서 나온다. 도시 브랜드는 시민들의 자긍심을 회복시키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도시 고유의 역사와 문화, 자연, 인물, 기억을 발굴하고, 그것을 시민들과 함께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도시 브랜드는 정책 전반과 통합되어야 한다. 단지 디자인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 도시 전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교육 정책, 산업 정책, 주거 정책, 관광 정책이 도시 브랜드의 철학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도시 브랜드가 도시 운영의 '중심 언어'가 되어야 한다.

 

 해외 도시의 사례는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철학을 브랜드 핵심으로 설정하고, 자전거 중심 인프라, 탄소중립 정책, 녹색 에너지 정책을 통합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슬로건을 기억하기보다는 도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일본 유후인은 '치유와 감성의 온천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온천, 소도시 상권, 느린 관광 흐름에까지 스며들게 하면서 외지인의 발길은 물론 귀촌 인구 유입까지 유도하고 있다.

 

 지방소멸은 도시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잃을 때 시작된다. 하지만 도시가 스스로를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시 브랜딩은 그런 가능성의 시작이다. 따라서 도시 브랜딩은 단지 '외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도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실천적 전략이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을 다시 숨 쉬게 하는 가장 구체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