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칼럼] 끊어진 주거사다리에 갇힌 중산층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중산층은 늘 주거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복지와 고소득층을 겨냥한 규제 사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 대출 이자를 감당해 온 이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튼한 허리였다. 하지만 최근 국토연구원의 보고가 가리키는 지표들은 이 튼튼했던 허리가 심각한 동맥경화를 앓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겉으로는 주거 안정을 이룬 듯 보이지만, 실상은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가 끊겨버린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중소득층의 주거 상황은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국토연구원의 ‘계층별 주거위상 진단’에 따르면, 소득 5에서 8분위에 해당하는 중소득층의 자가 보유율은 2006년 61.0%에서 2023년 64.0%로 점진적인 상승세를 보였고, 같은 기간 이들의 주거 이동률도 41.8%에서 31.7%로 10%포인트 넘게 급감했다. 표면적으로는 내 집을 가진 비율이 늘고 잦은 이사가 줄었으니, 주거 생활이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정'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체'라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중산층이 이사를 가지 않는 것은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이다. PIR은 주택가격을 가구의 연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소득에 비해 주택가격이 얼마나 높은지(즉, 주택구입의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는 지표다. 이 지표가 높아질수록 같은 소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택의 범위가 좁아지고, 갈아타기나 상향 이동을 위해 필요한 추가 자금의 부담이 커진다. 실제로 중산층의 자가가구 PIR은 2006년 3.4배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6.3배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중산층 소득의 증가 속도보다 집값이 훨씬 가파르게 올랐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택가격 수준이 높은 수도권은 2023년 8.5배로 그 부담이 더욱 두드러진다. 내 집 마련이라는 1차 목표는 달성했을지 몰라도, 평수를 넓히거나 더 나은 입지로 이동하기 위한 문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것이다. 결국 지금의 중산층은 '자산은 있지만 유동성은 없는', 혹은 '안정적이지만 미래가 없는' 상태에 갇혀 있다.

 

 중산층이 1순위로 꼽은 주거지원은 월세 보조나 장기 공공임대가 아니라 '주택 구입자금 대출지원'(41.4%)으로, 이는 '전세자금 대출지원'(26.8%)의 수요를 훨씬 상회한다. 즉, 이들은 여전히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의 진입을 꿈꾸며 금융 지원이라는 사다리를 갈구하고 있지만, 높아진 PIR 장벽과 대출 규제에 가로막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중산층의 고착화'는 단순히 개인의 욕망이 좌절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거 이동의 순환 고리가 끊어지면 부동산 시장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차단돼 사회적 역동성마저 저해된다.

 

 국토연구원 보고서 역시 중소득층에 대해 "안정성은 개선되었으나 부담능력이 약화되었다"고 진단하며, 내 집 마련 기회 확대와 금융 지원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집값을 잡거나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모으면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희망, 그 '끊어진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산층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퍼주기식 복지가 아니라, 그들의 소득과 자산 흐름에 맞춘 정교한 금융 지원과 갈아타기를 돕는 거래의 숨통을 트여주는 것이다. 허리가 굳어버린 사회는 결코 건강하게 뛸 수 없다. 지금이라도 중산층이 겪고 있는 ‘풍요 속의 빈곤’, 그 꽉 막힌 주거 혈맥을 뚫어줄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